글쓰기 산책 4

매일 글쓰기를 연습하세요.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항목입니다.



노래는 부끄러워서 포기하기 힘든 여유이자 자기표현이다. 잘하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잘 안하려고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노래도 배우고 싶어요. 가수나 그런 게 아니라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 학원에 등록할 때 ‘취미’로 넣었어요.

제가 초보인 이유 중 하나는 작가로서의 ‘나’를 주인공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문득 내 소설을 읽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네 이름이 왜 한두태야?” 한두태는 사람 이름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문학적 의미에서입니다. 그래서 더 배워야 해요. 저자 “나”와 주인공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많은 돈을 원한다면 그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정말 환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입에 쏙쏙 집어넣는게 제일 먼저 되네요. 먼저 나 자신을 돌봐야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정이 아닌 다른 시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가야만 해

내가 어떻게 글을 쓸지 결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은 항상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한 내용이나 설정을 의미하는 글의 느낌은 씨앗과 같습니다. 나는 씨앗을 골라 땅에 심습니다. 그러나 부족이 어느 방향으로 성장할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 태양을 향해서 자랄 텐데 북쪽을 향하고 있는지 남쪽을 향하고 있는지, 남동쪽을 향하고 있는지 북서쪽을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제하려고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망쳤습니다. 줄기가 움직이는 방향이 아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줄기를 돌렸더니 글씨와 씨가 말랐을 때가 있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씨앗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종이에 담아봅시다. 그러나 일단 심었다면, 즉 일단 시작했다면 저절로 글을 놓아야 한다. 첫 이미지나 첫인상을 어딘가에 적어두는 것은 괜찮지만 그런 이유로 이미지에 텍스트를 억지로 넣으면 안 됩니다. 그럴 의도가 없었습니다. 글쓰기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예술은 너무 어렵고 낯설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입니다. 공학이라면 머릿속의 계획대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다. 머리 속에 있는 것을 따라가야지, 그것보다 더 깊게. 그들이 바다를 바다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것은 유감입니다. 무의식은 바다만큼 넓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우주만큼 깊습니다. 저에게 무의식은 바다 또는 우주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 위에 떠 있다. 몸이 지구 위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손에 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예의를 갖추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예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조건을 다 맞추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나에게 맞는 행동은 하겠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내가 아는 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글쓰기 연습을 하는 이유는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운동을 위해 기초체력을 기르듯 원고 작업을 위한 기초체력을 기르는 연습을 합니다.

나는 단체생활을 싫어한다. 좋은 기억이 없어요. 어떤 결혼이나 작은 관계도 괜찮습니다. 점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단생활과 위계질서 있는 사회생활이 정말 싫습니다. 무질서한 천국에 가는 것보다 무질서한 지옥에 가는 것이 낫다.

내 생각에 예체능은 재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분야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예체능 분야가 특히 엄격하다. 전혀 재능이 없다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예술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어” 때문에 망설이고 망설입니다. 나는 항상 성공을 뒤에 둡니다. 나는 성공을 돼지 저금통에 있는 동전, 내가 원한다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건 틀렸어요. 성공이 아니라 성공이 보물입니다. 그를 찾으려면 계속 찾아야 합니다.

가끔은 삶이 밤하늘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무작위로 흩어진 달과 우리 인간은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냥 운일뿐일 확률은 운입니다. 운명이라 불러도 우연이라 불러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 내가 여기 있다는 것,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그것이 운명이든 우연이든 그저 현실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확신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정의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세상의 방식입니다.

때때로 나는 단지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빚이나 금전적인 일이 아닌 이상, 남을 맹목적으로 믿고 ‘네가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더 편리하지 않을까요? “너라서 믿는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일의 결과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물론 제가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제 기분입니다.

모든 것이 결국은 다 지나갈 것 같아서 아주 마음이 놓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부적절하게 화를 내거나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나는 그냥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그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설득을 해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할 의도로 행동한다면 나는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요구하는 강도에게 돈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은 불확실하고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불완전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 큰 미완을 만들기 위해 모인 미완. 보기에는 너무 큰 결함. 이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최근에 확신한 것 중 하나는 말을 반만 줄이면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우울증을 가장 잘 묘사하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내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 남들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일 뿐인 그런 느낌.

내 안에 있는 것은 주먹보다 작고 단단하다. 손을 꽉 쥐자 작지만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그보다 더 작고 단단한 것이 거기에 있습니다. 씨앗과 비슷합니다. 무형의 씨앗이기 때문에 어떤 힘으로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어떤 외부의 힘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씨를 꺾으라는 압력을 받고 내가 죽어도 씨는 꺾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내 안에 있어 씨앗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
씨는 누구도 꺾을 수 없습니다. 나만이 씨앗을 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씨앗은 암세포처럼 나보다 수명이 길다. 이 씨앗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다. 그 씨앗을 후세에 물려주고 예술로 남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뇌가 좋은 사람은 조건을 붙인 것을 좋아하지만, 똑똑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은 조건을 붙이지 않고 간결하게 말하는 것 같다.

가족에게 도움을 받는 건 지금처럼 집에서 사는 것뿐이다. 이제 나 자신도 싫증이 났고, 앞으로 가족에게 빚을 지게 되면 분명 안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본문 : https://blog.naver.com/hats4/222971749655